충북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충청매일] 겨우내 움츠렸던 땅이 이른 봄비에 기지개를 켜고, 여기저기에서 꽃들도 삐쭉삐쭉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몸은 아직도 겨울에 머물러 있는 듯 구석구석 아프고 삐걱거린다. 모처럼 운동을 했더니 오히려 아픈 곳이 많아져 고민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콘크리트 건물에 둘러싸인 우리의 몸과 마음은 푸른 잎과 맨땅을 숨 쉬고 밟아 본지 까마득하다.

 19세기 초 미국의 한 정신병원에서는 농장에서 일하는 것이 환자에게 이롭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 병원의 의사 벤자민 러시는 그의 글에서 ‘나무를 베고 불을 지피고 땅을 파는 데 도움을 줬던 병원의 미치광이 남성들이나 빨래하고 다림질하고 바닥을 청소한 여성들은 주로 회복된 반면, 이런 일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병원의 벽 속에서 삶이 시들었다’라고 말한다. 

 자연을 접하면서 생활하는 것이 콘크리트에 둘러싸여 사는 것보다 좋다는 증거는 이외에도 많이 있다.

 21세기인 요즘, 맨발로 흙길을 걷는 것이 유행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낯설었던 황톳길 맨발 걷기가 지자체마다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정부의 정책이라는 것도 유행을 타기 마련인데, 그중 맨발 걷기는 바람직한 유행이고 오래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 몇 년 전, 어스(지구, 땅과 흙 등에 접지하다)의 효능을 알고 맨발 걷기를 실천해봤던 필자로서 반갑기도 하다. 

 진화론 관점에서 현재 인류의 조상은 300만~350만 년 전에 출현했고, 땅을 밟지 않고 콘크리트 속에 살기 시작한 것은 고작 100년 남짓이다. 100년이라고 해도, 인류가 출현한 시간을 24시간으로 치면 불과 0.12초 전부터 땅과 멀리하며 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11시간 59분 59.88초까지는 땅을 비롯한 자연과 접하면서 살았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보다 더 짧은 시간일 것이다.

 300만 년 이상 땅과 자연을 접하면서 진화해온 인류에게 지금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교통사고를 겪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DNA나 신체조직, 그리고 정신적인 면에서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상태일 것이다. 이 교통사고의 상태를 더 좋은 것으로, 인류가 가야 할 방향으로 여기면서 살고 있다. 거센 태풍으로 땅 위의 작은 웅덩이에 쓸려온 물고기처럼 말이다.

 그러면 종교적 창조론 입장에서는 어떨까? 절대적 시간은 다르지만,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지구)를 ‘보시기에 좋게’ 만들었다. 흙으로 인간을 만들고 땅 위의 모든 생물을 관리하라고 명령한 후에 ‘보시기에 참 좋았다’라고 말한다.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창조주인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회복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거기에는 창조 세계로서 천지(지구)가 빠져 있다. 하나님, 인간, 그리고 지구의 삼각관계가 태초의 창조 때처럼 좋은 관계로 회복되어야 한다. 

  그런데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로 이 삼각관계가 깨져 왔다. 인간은 지금까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매달려 왔지만, 오히려 창조세계인 자연환경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죄를 짓고 있었다. 진화론이든, 창조론이든 지금 우리는 ‘좋았던 상태’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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